동려평생학교 강승우 교사 평생학습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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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좌승훈 작성일09-05-01 18:27 조회2,721회 댓글0건본문
제주시와 제주시평생학습발전협의회(회장 김민호)가 공동주최하는 2009 우수사례 공모에서 동려평생학교 강승우 자원교사가 성인 교육자 부문(평생교육기관, 단체, 직장의 교사, 강사활동 우수자)에서 최고상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다음은 강승우 교사 수기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동려평생학교 강승우
강승우 선생님께
그 무더운 여름철도 다 지나가고 하늘도 푸르며 나뭇잎도 옷을 갈아 입는 계절이군요!
선생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
저는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글로서 몇 자 적어 올리고자 팬을 들었습니다. 서투른 솜씨지만 귀엽게 봐주세요. 까막눈에서 이 만큼 이라도 선생님께서 한자 한 자 가르쳐 주신 고마음을 전허고자 합니다. 바쁘신 대도 불구하고 저희들을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노력하여 가르치신 선생님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님이 일찍 저 세상으로 가셔버려서 살림을 맡아 일을 보느라고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자의 글이라도 더 배우려고 합니다. 보살펴주십시오.
두서없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저의 욕심만 채우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요.
2008년 10월 31일
이신봉 올림
이 글은 현재 동려평생학교 초등심화반 최고령자이신 이신봉 할머니(79․제주시 삼도2동)가 제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연필로 또박 또박 써내려간 이 편지에는 지우개로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과 삐뚤하고 틀린 맞춤법 문구도 여러 군데에서 보이지만, 배우지 못한 ‘평생 한(恨’)을 풀어준 감사의 마음을 빼곡하게 담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야학을 통해 배움의 한을 풀었으며, 지금은 대학도 가고, 직장인이 돼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야학을 접하게 된 것은 1990년입니다. 당시 제 나이 20살.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 진학은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질 않아 취업을 하려고 해도 학벌에서 매번 걸리곤 했습니다. 중졸 이력서를 들고 취업을 하려니 도통 받아주는 곳이 있어야죠.
그러던 중 동려평생학교(옛 동려야간학교)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저에게 만학의 길을 열어줬습니다. 저에게 동려는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준 곳입니다. 저는 이를 악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찢어지는 가난이 저의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단 한 번도 전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중학교 과정을 다시 공부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8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습니다. 한라대 전산정보 처리과에 입학한 것이지요. 그리고 ‘동려회’란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동려회는 사단법인 동려(이사장 고병련)의 대학생 자원봉사 조직입니다.
저는 처음 제주시립희망원과 홍익보육원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갈수록 파편화되고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자원봉사활동이야말로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단법인 동려 내 청소년 봉사조직인 ‘초아’ 활동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00년 9월 저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선생님으로 처음 야학 강단에 섰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떨리고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또한 학생들은 이해를 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학’(가르치면서 배우고), ‘학강’(배우면서 가르친다)는 의지를 갖고 지금까지 야학 자원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재정적 어려움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배움에 터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금자리가 돼 온 것은 국가가 아닌 야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학은 정규사회에서 밀려난 마이너리티들에게 희망의 밑불입니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초등 기초반에 다니시는 한 아주머니(57․제주시 도남동)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학교는 꿈도 못 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61․제주시 일도2동)은 받아쓰기 100점을 받고, 야학 교사로부터 상으로 500원짜리 노트를 받던 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은 대학이다 뭐다 하지만, 지난해 초등부 졸업자 6명은 생애 첫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왕따와 폭행으로 학교를 그만뒀던 어느 고등학생은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늘 배움 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는 사단법인 동려의 경우, 현재 평생학교와 청소년학교, 교육문화원, 대학생․청소년 자원봉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75년 문을 연 이래, 34년 동안 1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경제적 문제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주부, 노인, 그리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 등 206명이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은 59명의 자원교사들입니다. 전직 일간지 편집국장, 체육회 홈보팀장, 전직 교장, 초․중․고 현직 교사, 학원 강사, 공무원, 대학생…. 저마다 하는 일은 달라도 가르치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제게 아주 각별하고 소중한 곳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홀로 서야 했던, 그 어려웠던 시절에 저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려야학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제 자신을 키워준 곳에서 또 다른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위해 매일 저녁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야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나눔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가 진실이고 가장 행복합니다.
다음은 강승우 교사 수기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동려평생학교 강승우
강승우 선생님께
그 무더운 여름철도 다 지나가고 하늘도 푸르며 나뭇잎도 옷을 갈아 입는 계절이군요!
선생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
저는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글로서 몇 자 적어 올리고자 팬을 들었습니다. 서투른 솜씨지만 귀엽게 봐주세요. 까막눈에서 이 만큼 이라도 선생님께서 한자 한 자 가르쳐 주신 고마음을 전허고자 합니다. 바쁘신 대도 불구하고 저희들을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노력하여 가르치신 선생님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님이 일찍 저 세상으로 가셔버려서 살림을 맡아 일을 보느라고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자의 글이라도 더 배우려고 합니다. 보살펴주십시오.
두서없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저의 욕심만 채우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요.
2008년 10월 31일
이신봉 올림
이 글은 현재 동려평생학교 초등심화반 최고령자이신 이신봉 할머니(79․제주시 삼도2동)가 제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연필로 또박 또박 써내려간 이 편지에는 지우개로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과 삐뚤하고 틀린 맞춤법 문구도 여러 군데에서 보이지만, 배우지 못한 ‘평생 한(恨’)을 풀어준 감사의 마음을 빼곡하게 담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야학을 통해 배움의 한을 풀었으며, 지금은 대학도 가고, 직장인이 돼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야학을 접하게 된 것은 1990년입니다. 당시 제 나이 20살.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 진학은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질 않아 취업을 하려고 해도 학벌에서 매번 걸리곤 했습니다. 중졸 이력서를 들고 취업을 하려니 도통 받아주는 곳이 있어야죠.
그러던 중 동려평생학교(옛 동려야간학교)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저에게 만학의 길을 열어줬습니다. 저에게 동려는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준 곳입니다. 저는 이를 악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찢어지는 가난이 저의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단 한 번도 전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중학교 과정을 다시 공부하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8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습니다. 한라대 전산정보 처리과에 입학한 것이지요. 그리고 ‘동려회’란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동려회는 사단법인 동려(이사장 고병련)의 대학생 자원봉사 조직입니다.
저는 처음 제주시립희망원과 홍익보육원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갈수록 파편화되고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자원봉사활동이야말로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단법인 동려 내 청소년 봉사조직인 ‘초아’ 활동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00년 9월 저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선생님으로 처음 야학 강단에 섰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떨리고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또한 학생들은 이해를 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학’(가르치면서 배우고), ‘학강’(배우면서 가르친다)는 의지를 갖고 지금까지 야학 자원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재정적 어려움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배움에 터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금자리가 돼 온 것은 국가가 아닌 야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학은 정규사회에서 밀려난 마이너리티들에게 희망의 밑불입니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초등 기초반에 다니시는 한 아주머니(57․제주시 도남동)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학교는 꿈도 못 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61․제주시 일도2동)은 받아쓰기 100점을 받고, 야학 교사로부터 상으로 500원짜리 노트를 받던 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은 대학이다 뭐다 하지만, 지난해 초등부 졸업자 6명은 생애 첫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왕따와 폭행으로 학교를 그만뒀던 어느 고등학생은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늘 배움 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는 사단법인 동려의 경우, 현재 평생학교와 청소년학교, 교육문화원, 대학생․청소년 자원봉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75년 문을 연 이래, 34년 동안 1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경제적 문제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주부, 노인, 그리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 등 206명이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은 59명의 자원교사들입니다. 전직 일간지 편집국장, 체육회 홈보팀장, 전직 교장, 초․중․고 현직 교사, 학원 강사, 공무원, 대학생…. 저마다 하는 일은 달라도 가르치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제게 아주 각별하고 소중한 곳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홀로 서야 했던, 그 어려웠던 시절에 저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 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려야학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제 자신을 키워준 곳에서 또 다른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위해 매일 저녁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야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나눔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가 진실이고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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